정원을 가꾸는 알로시아 이야기

완벽하게 직관형 인간이라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내게 이번 여행은 어떤 의무처럼 느껴졌다. 개발자로서 입사한 첫 회사를 어쩌면 자의적으로 어쩌면 타의적으로 퇴사한 뒤 장기 여행은 왠지 실업급여 신청처럼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일 중 하나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어”라는 단순하고도 회피적인 마음. 이 여행에 기대가 크지 않았다. 나라를 정하는 것도 귀찮고 싫어서 배우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딜 갈거야?“라고 물어 오스트리아에 가기로 정했다. 숙소비를 아끼려고 일주일은 친구 집에 묵고, 남은 일주일은 소도시를 전전하며 저렴한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알로시아의 에어비앤비를 찾게 된 것이었다. 그 숙소가 없었다면 절대 갈 일이 없어보이는 마을에 위치해 있었지만, 숙소 사진만 봐도 십여년전 에어비앤비 창업가들의 정신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는 듯 해보였다. 그 곳에 가기 위해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버스로 한번 갈아타야 했지만 다시 한 번 20대 처럼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알로시아의 집에는 리모트로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개발자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알로시아는 재활치료사로 일하다 은퇴하고 해당 지역에서 정계활동도 하고, 에어비앤비도 운영하고,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 요하네스는 영어가 유창하여 내가 지내는 3박 4일동안 몇시간이고 내 말동무가 되어주며 어머니 알로시아가 가꾼 집과 정원을 친절히도 소개해줬다. 정원에는 무려 5가지가 넘는 베리가 자라고 있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모든 베리들을 맛볼 수 있었다.

하루는 요하네스와 근처 소도시로 도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날 저녁에 거실에 가보니 알로시아가 컴퓨터와 책을 뒤져가며 열심히 작업 중인 것이다. 알고보니 알로시아가 가꾼 정원에 곤충들이 찾아오면 그걸 카메라로 찍어두는데, 그 사진들을 날짜별로 폴더링 해두고 어떤 곤충이 왔는지 책에서 찾아 기록해두는 것이었다. 요하네스와 내가 “곤충학101”이라고 이름 지은 그날 밤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며 다양한 곤충들과 그들의 습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된 날이었다. 정원 가꾸기는 알로시아에게 단순한 취미라기엔 꾸준한 일상이었고, 지루하거나 고된 일상이라기엔 기쁨으로 충만한 의식이었다.

라이프 드로잉 세션에서 만난 이름모를 할아버지의 이야기

빈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라이프 드로잉”이었다. 호주에서 지낼 당시 주말마다 즐겨했던 일 중 하나가 라이프 드로잉이어서 항상 그리웠는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괜찮은 라이프 드로잉 세션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라이프 드로잉의 묘미 중 하나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공유하고…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좋아서 빈에서도 라이프 드로잉 이벤트를 찾아 참여했다.

이벤트 당일, 조금 일찍 도착해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이 할아버지는 은퇴 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활동인 드로잉을 꾸준히 하기 위해 매주 참여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 그림을 쉬어온 나는 약간 긴장을 했는데, 그 이유는 내 그림을 보고 안좋게 평가할까봐였다. 매주 오는 그 할아버지는 분명 명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그림을 그릴테니 말이다. 실력을 뽐내려고 오는 곳은 아니지만 못 그리는 것은 너무 창피하니 가져온 노트의 각도를 살짝 비틀어 그 할아버지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런 묘한 긴장 속에 모델의 첫번째 포즈가 끝났고, 힐끗 할아버지의 노트를 봤는데, 아니 이럴수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게 아닌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또 순간적으로 평가를 해버린 나는 창피해졌다. 나는 왜 그림을 “(내가 생각하기에) 잘” 그려야만 매주 드로잉 세션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잘” 해야만 그 활동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창피해진 마음은 이내 자유로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생각했던 “잘”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며,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가를 생각하며, 감히 나와 다른 사람을 평가했던 편협한 시선을 버리고 자유롭게, 나답게 그리는 것을 연구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정원을 가꾸는 개발자

나는 IT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로 나의 직업 정체성과 나의 정체성이 일체화 되어있었다. 내 직업적 성취가 곧 나의 성취였고, 제품이나 코드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였다. 성취지향적인 환경에서 별안간 맞이한 30대의 정체성 혼란은 꽤 긴 기간동안 번아웃이라는 증상으로 신체화되었다. 내 모든 행동, 노력에는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었다. 인정을 갈구하고 평가를 요구했다. 그것이 (전 직장동료의 아버지께서 항상 하셨다는 “다 좋은 것 없고, 다 나쁜 것 없다”는 말씀처럼)내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은 내게 분명한 공허함을 줬다.

알로시아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그 어떤 인정이나 존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곤충이 찾아오는 것은 환영하나, 이를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름모를 할아버지가 매주 라이프 드로잉 세션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떤 좋은 평가를 요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로 기쁨이고 사랑이었다.

내게 0과 1로 이루어진 것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향유할만큼의 덕력은 없지만 그래도 잘 정돈된 코드, 옆자리의 동료를 위하는 마음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은 내게 있어 큰 기쁨이다. 사용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일. 누군가에게는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코드를 갈고 닦는 일은 내게 큰 기쁨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개발 4년차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난 여행에서 말이다. 늦은 건지 빠른 건지 감도 안오지만 나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더이상 판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을 하고 왔고 그날 나는 결심했다. 내 블로그의 제목은 “정원가꾸기"가 될거라고. (4년동안 블로그를 만들지 않은 것은 이 제목을 찾기 위함이었다 - 농담이다)

정원을 가꾸는 마음으로 배워나가자. 정원을 가꾸는 동안 운 좋게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은 환영하며, 내 개발 인생을 향유하려한다.